개요
홍수환(洪秀煥, 1950년 5월 26일~)은 프로복싱 세계챔피언을 지낸 대한민국의 전직 복싱 선수이다.
4전5기 챔피언의 신화라는 닉네임으로 유명한 그는 서울특별시 출생으로 한때 1955년에서 이듬해 1956년까지 경기도 시흥군 과천면(지금의 경기도 과천시)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고 그의 본관은 남양(南陽)이며 종교는 개신교이다. 프로 통산 전적은 41승(14KO)5패4무.
생애
1969년 5월 10일 프로복싱에 데뷔(vs 김상일. 4라운드 무승부)한 그는 1974년 7월 3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 웨스트릿지 테니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세계복싱협회(WBA) 밴텀급 타이틀전에서 아놀드 테일러를 상대로 15회 판정승을 거두고 챔피언으로 등극하며 한국을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경기 직후 전화로 어머니에게 외친 "엄마야 나 참피언 먹었다!"라는 말이 유명한데, 이에 어머니는 "김기수(한국 최초의 권투세계챔피언) 어머니가 그렇게 부럽더니만, 평생 소원을 풀었다."며 우스갯소리를 하셨다. 물론 "귀에 피는 안 나냐, (홍수환이 피가 안 난다고 하자,) (그럼) 됐어." 라는 자상한 말씀도 아끼지 않았다.
1974년 12월 28일 필리핀의 페르난도 카바넬라를 상대로 1차 방어전에 성공하지만 1975년 3월 14일, 미국에서 열린 2차방어전에서 멕시코의 알폰소 자모라에게 패해 타이틀을 상실한다. 제대로 훈련은 못한 탓도 있다고 하고 경기전에 꿀을 먹어 컨디션이 엉망이었다고도 한다. 아무튼 2차 방어전 당시 엄청난 KO율을 자랑하는 자모라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4라운드 KO패. (이 때 홍수환은 현역 군인 신분이었는데, 방어전에 패배하고 귀국하자마자 영창에다 유격 훈련까지 받으며 고생했다. 오죽 고생을 했으면 패배한 직후 권투를 그만둘까 생각하다가 이 군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차라리 권투를 계속하는 게 낫겠다'라며 생각이 바뀌었다고. 이것을 절치부심하여, 보유하던 목욕탕을 팔면서까지 전재산을 다 모아서 1976년 10월 16일, 한국에서 리턴매치를 벌이지만 이때도 TKO로 패한다. 먼저 다운을 빼았긴 했지만 후에 그로기 상태로 몰리게 되는데 이때 심판이 카운트를 세지 않고 바로 TKO를 선언, 이 때문에 홍수환의 형이 심판판정에 강한 불만을 제기하는 등 난장판이 벌어진다. (이 경기는 인터넷에 아무리 찾아도 찾을수 없다. 짤막하게 그로기 상태에서 TKO가 선언되는 장면만 남아있을 뿐.)
1977년 11월 27일(현지시각 11월 26일 밤)에는 파나마 뉴파나마체육관에서 열린 세계복싱협회(WBA) 주니어페더급(슈퍼밴텀급) 초대 타이틀 결정전에서 헥토르 카라스키야를 3회 KO로 누르고 챔피언이 된다. 특히 홍수환은 당시 2회 4번 다운된 뒤 3회 KO승해 `4전5기' 신화를 이루었다. 영상 34초부터 경기 장면이 나온다. 한편 경기 이후 홍수환과 카라스키야는 오히려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 홍수환이 도전 지구탐험대에 출연해 카라스키야를 만나러 건 적도 있고 2017년 11월 27일에는 카라스키야가 경기 40주년을 기념해 홍수환을 만나러 방한했다.# 카라스키야는 복싱을 그만둔 후 파나마에서 산 미구엘리토 시장을 거쳐 파나마 상원의원으로 국회의원으로 활동 중이다.
카라스키야와의 일전은 전국민적인 사건이었다. 드라마틱한 승부와 당시 최고의 인기스포츠였던 권투와 맞물려 4전5기의 신화는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또 아놀드 테일러를 꺾고 챔피언을 등극할 당시 등장했던 "대한국민 만세"를 다시 언급해 국민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해주었다. 한국프로복싱사상 가장 극적인 세계타이틀매치 승리로 기억되며 홍수환은 그야말로 극적인 승부의 대명사가 되었다. 어린애들까지도 4전5기의 모습을 따라할 정도였다.
이후 가사하라 유우를 상대로 1차 방어전에서 승리했으나, 1978년 5월 7일 한국 장충체육관에서 콜롬비아 선수인 리카르도 카르도나를 상대로 치른 2차 방어전에서 패배해 챔피언 자리에서 내려오게 된다. 당시 버팅으로 인해 1라운드부터 눈두덩이에 피가 났는데, 당시 협회와의 다툼으로 인해 제대로 된 조치를 받지 못하고 경기가 속행되었다고 한다. 12라운드까지 근성으로 버티다 결국 기권패. 피가 굳어 층이 생기고 그 위로 피가 흐를정도였다고 한다. 그 경기를 마치고 사실상 은퇴 상태로 1년 이상의 공백기를 갖다가 1980년 12월 19일 염동균과의 마지막 경기를 끝으로 프로권투선수로서의 경력을 끝내게 된다. 참고로 경기 결과는 10라운드 무승부를 기록했다.
권투선수에서 은퇴한 뒤 1995년에는 권투해설위원을 맡기도 했으며, 이후로 방송에도 자주 출연하며 자신의 권투선수 경험을 통한 삶의 한 모습을 다시 일깨우고 조명하는 강연자로 명성을 얻었다. 단순히 세계챔피언 출신의 경력이나 4전5기 명승부를 자랑하는 수준이 아니라, 은퇴 이후에 이어진 삶의 굴곡을 극복했던 여정과 믿을 수 없을만치 해박한 상식과 기억력으로 전국적인 명성의 명강사로 자리잡았다. 20년간 1,000여 곳이 넘는 관공서, 대기업에서 홍수환을 초청했고, 부인 옥희와 함께 TV 방송에서도 종종 만나볼 수 있다. 그의 강연과 방송에서는 선수 시절부터 변함없던 패기와 긍정 에너지를 전해준다.
'인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토홍 11세 - 홍한(洪瀚) (0) | 2022.12.18 |
|---|---|
| 토홍 26세 - 홍수철(洪秀哲) (0) | 2022.12.18 |
| 토홍 26세 - 홍사구(洪思九) (0) | 2022.12.18 |
| 토홍 26세 - 홍사익(洪思翊) (0) | 2022.12.18 |
| 토홍 22세 - 홍대용(洪大容) (0) | 2022.12.18 |